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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
31
증정서 20:0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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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
31
증정서 01: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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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
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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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
02
지나가는 과객 17:21:48
* ㅇ ㅇ ㅇ 박사님 왈

              " 이게 ~ ~  뭡니까 ? ? ?  깔끔하게 끝내주세요. ~ ~ ~ "

           
            < 설문조사 >

            천도교평신도회의 해산에 대한 전국교인들의 의향을 묻읍니다.

            할일이 아직 남았다...반대..

          박수칠때 가라 ...찬성 ...

          대안 마련할 때까지만 존치 ..중립..
삭제
2019.03
02
천도교 교인 17:09:54
* 빈대 잡겠다고 초가삼간 태우려고 날뛰었던 일은 잊어버리세요. *
삭제
2019.03
02
이희관 15:41:01
나도 감정을 갖고있는 사람이라서 밑에 글을 올렸지만 동학마당은 이미 시기를 놓쳤지만 지금이라도 해체하는게 옳습니다. 여기에 구차한 토를 달면 마지막까지 추잡해집니다. 떠나는 모습이라도 아름다워야해요. 사과,이딴거는 필요 없으니 깨끗하게 해체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가짜로 하는체 하지말고 진짜로 한울님을 위하는 마음으로 사세요. 우선 본인부터 행복해집니다.
삭제
2019.03
02
이희관 13:41:45
단 한 놈이라도 지난 과오에 대하여 진정성있는 사과를 하던지, 아니면 단 한 놈이라도 그 씻을수 없는 과오에 대하여 할복으로 죄를 씻어내던가해야지 아무일도 없었던것처럼 그냥 해산? 조까.
삭제
2019.02
28
이희관 11:51:44
내 글을 밀어내려고 애들 쓰시는구먼. 그것도 당당치 못하게 가명으로.....그런다고 태양이 손바닥으로 가려지나.
부끄러운짓을 하면 그렇게 된다는것을 알았으면해. 그러나 너무 걱정하지는 말어. 그렇게 죽을짓을 한것만은 아냐.
자신의 아버지를 죽였다는 인간도 교역자로 나오는 판국인데 뭘 그까짓것가지고 그럴 필요는 없어.
이거 이런데서 공개하면 내가 역으로 사실공표에 의한 명예훼손으로 감빵가게 되니까 누군지는 말못해.
그러나 내가 알아보니 개인간에 비밀을 말하는것은 명예훼손과 상관없다니까 정말 궁금하면 나한테 전화해. 알려줄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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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
27
퍼온글 23:09:20
개벽과 동학혼
              - 전국대의원대회를 앞두고
                                                연원회 간사  김 응 조

  1. 실종된 동학혼을 불러일으켜야
  우리나라 근현대사에서 보국안민을 이념으로 표방한 천도교의 역할이 암울했던 민족사의 앞길을 개척하는데 크게 기여했다는 사실은 익히 알려져 있다. 올해 새로 지정되는 ‘동학혁명기념일’을 비롯해서 ‘3·1절’과 ‘어린이날’ 등 세가지 국가기념일 내지 공휴일이 천도교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이 이를 웅변으로 입증하고 있다. 여타 종단에서 자체 종단의 창시자를 기리는 기념일과 달리 국가 사회를 위해 헌신한 공적을 기리는 국가기념일 세가지가 한 종단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천도교인으로서 자긍심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랬던 우리 교단이 과거에 보여주었던 그런 활력을 상실한 채 침체의 국면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교인들은 3년마다 개최되는 전국대의원대회를 맞이할 때마다 새로 구성되는 교단 집행부가 교인들의 숙원인 교단중흥을 위한 실질적인 역할을 해주기를 기대하고 있다.
  아시는 바와 같이 금년 3월에도 전국대의원대회가 개최된다. 지금까지 3년마다 전국대회에서 새로 선출되는 집행부는 예외없이 교단을 중흥시키겠다고 공약 아닌 공약을 하고 있지만 오히려 교세는 침체일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숨길 수 없는 현실이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뜻있는 교인들은 위기의식을 느끼게 된다고 말하기도 한다.
  교단침체의 원인에 대해서는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할 수 있겠지만 필자는 그 원인을 한마디로 우리 교단이 동학혼을 상실한데 기인한다고 생각한다. 바꾸어 말하면 우리나라 근대사를 역동적으로 이끌었던 동학·천도교의 개벽정신이 실종된데 근본원인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앞으로 교단의 활로를 열어나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교인들로 하여금 실종된 동학혼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동기부여가 절실히 요구된다.

  2. 해월신사의 교훈과 선견지명
  해월신사는 포덕 16(1875)년 10월에 제례를 봉행하면서 그 자리에 모인 제자들에게 용시용활(用時用活)을 설법하였다. 당시는 그 4년 전의 이필제의 영해작변으로 교문이 엄청난 타격을 받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2년 전에는 관헌에 쫓겨다니던 대신사의 박씨 부인이 환원하고 포덕 16년 새해 들어 둘째 아들 세청이 환원하는 등 교단이 매우 곤경에 처했던 시기였다. 그런 상황에서도 해월신사는 용담과 경주 등지를 순회하면서 교인들을 수습하는 한편 10월 18일 자택에서 제례를 봉행하면서 제자들에게 “대저 도(道)는 용시용활하는데 있나니 때와 짝하여 나가지 못하면 이는 죽은 물건과 다름이 없느니라”고 말씀하면서 제자들의 분발을 촉구했다.
  여기서 우리는 시대와 더불어 나가지 못하는 종단은 도태된다는 해월신사의 경고를 읽을 수 있다. 당시 해월신사는 이를 단순히 설법에 그치지 않고 그 자리에서 당신의 이름은 물론 제자들의 이름까지 모두 ‘때 시(時)’자를 넣어 바꾸게 했다. 그래서 먼저 해월신사 스스로가 본명인 ‘경상(慶翔)’을 ‘시형(時亨)’으로 바꾼데 이어 차도주인 강수(姜洙)를 강시원(姜時元)으로, 유인상(劉寅常)을 유시헌(劉時憲)으로, 전성문(全聖文)을 전시황(全時晄) 등으로 고치게 했다.
  해월신사의 시형(時亨)이라는 이름에는 당시 동학이 처한 어려운 상황을 앞장서 이끌면서 형통해 뚫고 나가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그리고 시원(時元)은 시대의 으뜸가는 사람이 되라는 뜻으로, 시헌(時憲)은 시대의 법이 되라는 뜻으로, 시황(時晄)은 시대에 빛나는 사람이 되라는 뜻으로 시(時)자를 넣어 이름을 바꾸게 한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해월신사가 무엇보다 종교지도자의 신념과 시대적 사명을 매우 중요시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3. 위기를 발전의 기회로 승화시킨 역사
  천도교는 경신년(1860)에 창도된 이래 국금의 대상이 되어 스승님을 비롯한 수많은 교단 지도자들이 순도하는 등 핍박과 희생으로 점철된 형극의 역사를 기록하였다. 이를 일일이 말할 수는 없지만 교조신원운동을 비롯해서 동학혁명, 갑진개혁운동, 3·1운동, 항일운동 등의 전개과정에서 교단은 존망을 예측할 수 없는 위기에 봉착하기도 하였다. 그런 상황에서도 이를 슬기롭게 극복하면서 오히려 교단을 한 단계씩 성장시켜 나가는 저력을 발휘했다.
  ‘위기는 곧 기회’라고 말한다. 천도교가 동학혁명이나 3·1운동 등으로 엄청난 타격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재기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위기를 기회로 반전시킨 역사적 교훈으로 기록되고 있다. 금년에 3·1운동 100주년을 맞이하면서 그중에서 3·1운동 후 극한상황에 놓였던 교단을 어떻게 기사회생시킬 수 있었는지 그 과정을 살펴보기로 한다.
  많은 교인들은 3·1운동 후 천도교가 1920년대 우리 사회에서 신문화운동을 선도하면서 활발하게 활동한 사실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당시 3·1운동으로 난파상태에 놓였던 교단을 어떻게 극복하여 신문화운동의 주역이 될 수 있었는지 이를 아는 교인은 많지 않을 것 같다.
  천도교는 3·1운동을 주도함으로써 일제의 가혹한 탄압으로 엄청난 피해를 당했다. 의암성사를 비롯한 교단 핵심 지도부가 거의 구금되었고, 용산에 주둔하고 있던 일본군 1개 대대가 중앙총부를 강점하는가 하면, 전국적으로 수많은 교구와 인명 피해가 상상을 초월하였다. 보성전문학교와 동덕여학교의 경영마저 포기해야 했을 뿐만 아니라 일제는 중앙총부의 현금과 은행 예금 수백만원을 압수·동결함으로써 교단은 재정적인 공황상태에 빠졌다.
  그런데 일제는 우리 민족의 전면적 저항을 불러일으켰던 3·1운동 후 이 해 8월에 강제합병 후 시행했던 헌병경찰제도를 앞세운 악명 높은 무단통치를 문화통치로 전환한다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그동안 엄격히 금지됐던 언론·출판·결사에 대해 제한적이나마 자유가 허용되고 정치단체를 제외한 결사(結社)의 자유도 허용되었다. 물론 이것이 식민통치의 본질적인 변화가 아닌 우리 민족을 회유하기 위한 양두구육(羊頭狗肉)의 정책적 변화에 불과했지만 우리 교단은 이 기회를 재빨리 이용해서 청년들을 주축으로 교단 재건을 위한 돌파구를 마련하게 되었다.
  그 첫 번째가 문화통치 발표 후 한달도 되기 전인 9월 2일에 창립된 천도교청년교리강연부(天道敎靑年敎理講硏部)다. 이 조직은 점차 전국 교구로 확대되면서 다음해 4월 25일에 천도교청년회로 명칭을 변경하여 교단재건에 앞장섰다. 두 번째가 다음해 6월에 설립한 개벽사의 출판운동이다.
  청년교리강연부의 조직은 투지와 정성이 있으면 성장 가능성이 있지만 개벽사를 설립하는데는 상당한 자본이 있어야 했다. 원래의 계획은 신문을 발행하려 했다. 동아일보와 조선일보도 그 무렵에 창간되었는데, 많은 운영자금이 필요한 신문사를 설립한다는 것은 재정이 바닥난 교단형편상 불가능했다. 그래서 그 대안으로 매일 발행해야 하는 신문보다 한달에 한번 발행하는 잡지 간행이 운영비가 적게 들기 때문에 계획을 변경하여 개벽사를 설립하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교단의 악화된 재정형편으로 개벽사 설립자금마저도 마련할 길이 없어 곤경에 처하게 되었다. 이 소식을 들은 평안도 교인 최종정(崔宗楨)이 1천원을 지원하고 변군항(邊君恒)이 5백원을 기부함으로써 개벽사를 설립할 수 있었다.
  이처럼 어렵사리 출범한 개벽사는 1920년 6월에 창간한 종합잡지 「開闢」을 필두로 그 후 「新女性」, 「어린이」, 「別乾坤」, 「學生」, 「彗星」 등 계층별 잡지를 발행하면서 잡지왕국을 이룩하였다. 이러한 개벽사의 출판문화운동과 더불어 청년회가 천도교청년당으로 발전하면서 전국적으로 어린이운동, 농민운동 등을 전개하면서 당시 우리 사회 신문화운동의 주역으로 등장함으로써 3·1운동으로 난파당했던 교단을 기사회생시키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삭제
2019.02
27
퍼온글 23:05:55
해월 스승님
개벽운수에서

성한것이 오래면 쇠하고 쇠한것이 오래면 성하고,
밝은것이 오래면 어둡고 어두운것이 오래면 밝나니 성쇠명암은 천도의 운이요.
흥한 뒤에는 망하고 망한 뒤에는 흥하고,
길한 뒤에는 흉하고
흉한뒤에는 길하나니
흥망길흉은 인도의 운이니라.
경에 말씀하시기를 "그 
사람의 귀천의 다름을 명하고 그 사람의 고락의 이치를 정했으나, 그러나 군자의 덕은 기운이 바르고 마음이 정해져 있으므로 천지와 더불어 그 덕에 합하고
소인의 덕은 기운이 바르지 못하고 마음이 옮기므로 천지와 더불어 그 명에 어기나니, 이것이 성쇠의 이치가 아니겠는가" 하셨으니,
이것은 천리와 인사가 부합한 수니라.
  경암 한 경 노 심고
삭제
2019.02
27
퍼온글 23:02:58
실천학문?
연구의 대상으로 봅니다.

삼암 표영삼 선생께서는 동학을 학문의 학으로 보지 않고.
학과 같은 개념으로 법과 교를 사용하여
학. 법.교등의 세가지를 같은 개념으로 사용하셨다고 말씀하셨읍니다.
도를 신념체계로 보고
학. 법. 교를 수행체계로 보신 것입니다.
더 공부 하겠읍니다

한경노 경암 어르신 글
삭제
2019.02
27
모심 23:00:20
모시고 안녕하십니까
지금까지 어려운  환경속에서도
동학마을(천도교평신도회 ) 에
물신양면으로 많은 도움주신 회원님들께  감사를드립니다
지금까지  동학마을(천도교평신 도회)에서 추진한 여러 일들을
평가하고 앞으로 동학마을이 해야할 사업,운동을 결의 하고저합니다 동학마을(천도교평신도회)
회원.그리고 관심이 있는 전국동덕님의 많은  참석을 바람니다

보국안민,광제창생,지상천국,포덕천하

일시  포덕160(2019)년 3월2일
          토요일 오전11시
장소  대전교구 (성화실)

동학마을(천도교평신도회)
  상임대표  박노임
  공동대표  손만조
  공동대표  이명휘  심고
삭제
2019.02
27
이희관 10:25:39
60여년 교구설립이래 최초로 교구회의가 파행으로 끝났다는 보도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심상치 않다. 평소 평신도회의에 우호적인 입장을 취해온 H동덕은 표대결로도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보이는데 불법논란에 휘말릴것이 뻔한 상황에서 왜 그런 무리수를 뒀는지 믿기지 않는다며, 무엇이든 힘으로 밀어붙이면 될 것이라는 오만을 스스로 경계했어야했는데 다소 아쉽다고 지적했다.

대전교구 소속이던 C동덕은 김용환 전 교구장에 대하여 너무 오랫동안 교구장을 하다보면 아무리 조심해도 무의식중에 사유물로 착각하게되어 우려할만한 일이 발생할것이라고 직언했었던 사실을 상기하며 그 우려가 현실로 나타난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또 다른 C동덕은 어떤 경우든 인준해야한다는 규정이 없는 한 총부의 인준은 사실상 어려울것이라고 전망하고 불법 탈법의 결과가 인준된다면 사실상 인준절차는 이번사태를 계기로 사문화될것이라고 단정했다.

한편 경상지역의 J동덕은 대전교구가 결과와 관련없이 한동안 혼란에 빠질것이라 우려하고 모두 화해와 협력으로 문제를 풀어갈 것을 주문하면서 이런 때 중재를 하여 화해와 협력을 이끌어낼 마땅한 지도자가 없는 점이 우리 교단의 약점이라고 덧붙였다. <대전 이희관>
삭제
2019.02
25
이희관 11:46:20
푸하하하.... 어제 회의에서 어떤 미치광이가 바른말하는 나를 출교시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는데요. 그동안 자신의 성품이 너그럽거나 화해나 이해를 위하여 참고 있던게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무진 애를 쓰셨는데 그게 맘대로 잘되지 않는가봅니다. 이정희 교령에게도 매달려 출교시키려 온갖 노오력을 다했음에도 멋지게 실패했습니다그려. 다른 방법을 찾아보세요. 저는 이미 누구도 건들기 어렵게 이미 대못을 다 박아놓았으니까 막말로 출교되도 걱정할게 없습니다. 돌아와서 다 잡아쳐넣으면 됩니다.

저는 짧은 임명직 교구장시기임에도 개인이름으로 되어있는 교구소유 통장을 몽땅 교구명의로 전환시켜 놓았으며 꾸준히 교구를 망하게 만든 해교분자를 교구사상최초로 출교시켜버리는데 성공했습니다. 바로 이 일이 제가 평생 한 일중 가장 자랑스러운 일입니다. 아울러 그동안 가계부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게 엉망으로 작성되었던 교구회계를 국제표준방식인 ERP프로그램을 사용하도록 조치했습니다.

아주 기초적인 회계원리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이른바 경리부장이란 분이 계속 궁시렁거리길래 그럼 원하는 프로그램으로 해라. 법인회계를 해봤던 내가보기에는 가장 쉽고 작성하기도 편한거라 권했지만 기준에만 맞다면 어떤 프로그램을 사용해도 좋다고 말해줬습니다. 어쩔수 없이 하기는 하는 모양인데, 좀처럼 맞지도 않고 어찌보면 아무렇게 사용해도 부정을 잡아낼수없는 자기만의 독특한 방식에 대한 미련이 남는가봅니다. 이해는 충분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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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
25
이희관 07:49:10
이날 저들측 입장에서 개회정족수 의결정족수가 예전엔 어쨋는지 모르겠고 다른 회의도 모르겠는데, 우리 마음대로하면 되고 아무런 문제될것이 없다고 해석(?)한 배대식은 바로 전년도 교구회의에서는 개회정족수라는것이 있으니 사전에 위임장을 이용해서라도 이를 준수하는게 옳다고 주장하며 교구회의를 무산시키는데 일조했던 장본인입니다. 이분은 현재 보험영업을 하며 대전교구에 두어개의 빨대를 꼽아둔 상태입니다. 이해는 충분히 됩니다만 자제분들에게 부끄럽지 않은지 묻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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